EE#0045 봉준호 감독 "<기생충> 인물들이 악한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걷잡을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진다." (이화정, <씨네21>, 2019)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볼때 스포당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보고 나서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관객이 700만이 넘은 지금은 지하에서 살던 배우들도 완전체로 무대인사를 다니더라. 늘 봉준호 감독을 볼 때마다 달변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돈된 생각을 차분한 어조와 기품있는 태도로 말씀하신다. 특히 (2017.06.15) <jtbc 뉴스룸> 인터뷰(링크)는 정말 레전드였지. 마지막으로 손석희 사장께 질문했는데, 마치 그 질문을 하려고 출연한 느낌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이 인터뷰를 보며 본디 직업은 지속되는 큰 의도와 소소한 기쁨들이 함께 있어야 지속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늘 자신에게 이 작업이 가지는 의미는 고민하게 되는.
-박 사장네 가족은 감독님 영화에 완전히 새롭게 진입하는 배우군이다. 특히 이선균 배우는 오래 활동한 배우인데 감독님과의 작업은 처음이다.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해왔지만 미리 짜여진 어떤 상투적인 틀에 가둘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박 사장 역할에 내가 주문하고 미리 상의한 모습도 있었지만, 그 이상을 보여준 순간들이 많았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정적인 순간에, 절묘하게 즉흥적인 무언가를 던져주어 숏의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기도 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젊은 CEO로 고급차 세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게 너무 잘 어울리더라. 최상류층을 연기한 걸 텐데 이선균 배우의 왼쪽 측면을 찍으면서 많은 쾌감을 느꼈다. 선균씨의 왼쪽 뺨이 너무 좋다. (웃음)
감독님이 이렇게 본격적이고 디테일하게 부유층의 현재를 구현한 건 처음이지 않나.
=홍경표 감독님이 “준호야, 우리가 처음으로 부자를 찍어본다아~” 하더라. (웃음) 따져보니 지저분한 형사(<살인의 추억>), 한강매점(<괴물>),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꼬리칸에서 벼룩 잡고 있고(<설국열차>). 약제상 과부(<마더>)만 봐도, 그 영화 찍으면서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 99%가 꼬질꼬질하잖나. 어디 하나 광택이 안 난다. 혜자 선생님이 들고 있는 골프채를 빼고는. (웃음) 유일하게 <옥자>의 루시(틸다 스윈튼)가 부자지만 그녀의 일상생활은 나오지 않으니 이번이 생활상을 보여주는 거로는 최초다. 부자들과 부잣집을 찍는 최초의 경험이었고, 그래서 아주 흥미로웠다. 잘 모르는 세계라 상의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했다. 이런 가구가, 이런 벽지가, 이런 쓰레기통이 있구나. 쓰레기통이 250만원인데, 페달을 내려도 뚜껑에서 소리가 안 난다. 나는 그런 세계가 있는지 몰랐는데 너무 신기하더라. (웃음) 그거 반납할 때도 달달달 떨면서 했다. 혹여 흠집날까 봐. 신기한 세계를 경험했다.
-<기생충>이 이제 세상에 나온다. ‘기생충이 나온다’니 좀 어감이 이상하지만. (웃음)
=이 작품을 통해 현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거 같다.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의 드라마는 전세계 어디에나 다 있는데, 그 갭이 점점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질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주 한국적인 영화고 한국적인 디테일로 가득한 영화지만 동시에 전세계 모두가 동일하게 처한 현 시대에 대한, 아주 보편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이야기했다는 게, 나 스스로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954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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