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0001 김혜리 『진심의 탐닉(2010)』: 인터뷰는 가장 날것인 문학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
씨네21은 인터뷰를 참 잘하는 잡지 중 하나이다. 김혜리 기자님의 인터뷰를 읽고 있노라면 인터뷰이를 향한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에 나까지 반신욕을 하는 듯 몸이 따뜻해진다. 인터뷰라는 장르가 가장 날 것인 문학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 책장에 있는 인터뷰책들 중에서 가장 1등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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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세계를 넓힌다(유시진의 <쿨핫>에 나오는 말). 나의 경우, 영화 <메트릭스>를 보다가 ending credit에 흐르는 RATM의 ‘Wake up’을 듣고, RATM의 앨범을 찾아 듣고 공연도 가본다. 영향을 받은 가수가 있었다면 그 가수의 노래도 들어본다. 책도 영화도, 다수에서 하나로 하나에서 다수로 장을 넓혀나간다. 내게는 잡지의 인터뷰도 다르지 않다.
각종 문화 잡지가 범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읽을 수 있는 인터뷰가 넘쳐나 행복했다. 인터뷰이의 생각을 읽고 무언가가 공명한다고 느낄 때 행복했다. 나만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희열이란 연인과 손을 처음 잡을 때만큼이나 짜릿했다.
예를 들어, 저번 주 <Cine21> 인터뷰에서 영화배우 박중훈 씨가 수많은 예술가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산다고 자위하는데 기분 내키는 걸 담아내야 진짜 예술가라고 하셨다. 원유는 자동차를 굴러가게 하지 못하고 이성으로 정제하여 휘발유가 되어야 쓸모가 있는 것이라며. 공교롭게도 나도 순간의 감정을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즈음 그림일기를 써보려고 하다가 벽에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happy”라는 단어보다는 “joy”라는 말을 훨씬 더 좋아한다고, happy에는 왠지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는 뉘앙스가 있고, 결과보다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는 같은 호의 마이크 마이어스(<슈렉>시리즈에서 슈렉 역)의 인터뷰도 참 유익했다. 왠지 ‘행복’은 수동적이고 ‘즐거움’은 능동적인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예전에 <Cine21>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들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각 분야의 걸출한 인물들이 각자 다른 포즈로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모여 있는 표지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헐리우드 배우들이 십 여명 모여있는 광고 사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주간지의 컬러풀하고 얇은 재질의 종이에 인쇄된 활자와 모노톤의 깔끔한 레이아웃 위에 얹어진 활자의 무게감은 참으로 다르다. 같은 내용이지만 후자가 왠지 더 설득력 있고 진중해 보인다
평소부터 그 탁월한 기획력과 추진력을 배우고 싶던 <무한도전>의 김태호PD, <선덕여왕>을 촬영 당시 전 스태프에게 본인이 광고하던 게임기를 돌렸다던 통 큰 배우 고현정, 언젠가 EBS의 인터뷰에서 정교하고 확신에 찬 언어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하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 장한나, 담담하고 선선한 문체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김연수 작가… 무려 22명의 크리에이티브 리더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다.
많은 인터뷰가 모여 있다 보니 아이스크림 가게에 온 아이 같이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몰라 서성였다. 이런 책은 시간이 날 때 한 챕터 씩 끌리는 대로 읽는 것이 정석인 것 같다. 한번에 다 읽어버리면 마치 여러 종류의 향수를 한 번에 맡은 것처럼 머리가 혼미해지기 쉽상이다.
22개의 인터뷰는 각기 색깔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성실함과 열정이다. 배우 하정우는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습관처럼 자신의 가정교사인 거장들의 영화를 보며 공부하고, 김태호PD는 ‘(그의 표현대로) 인체 세포의 수만큼, 여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의 숫자만큼 많은 소재’들을 하나씩 형상화한다. 액션에도 연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때릴 대도 왜 때리는지 왜 칼을 뽑는지 감정을 갖고 한다는 배우 류승범에게선 프로패셔널함이 느껴진다.
독자들이 궁금할 법한 내용도 빼놓지 않았다. 배우 고현정은 예의 그 달큰한 얼굴로 결혼 시절과 엄마로써의 기분을 산뜻하게 얘기한다. 사진이 한 장이고 지면인 인터뷰이지만, 저절로 그 표정과 목소리가 상상이 된다. 정치 신념 때문에 KBS <스타골든벨>에서 교체됐다고 알려진 MC 김제동의 솔직한 심정을 듣는 것도 좋았다. 인터뷰이가 기분 나쁘지 않게 자연스럽게 원하는 질문에 답을 얻는 김혜리 기자의 방식은 그녀의 내공에 감탄하게 한다. 인터뷰이에 대한 박식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으로 옮겨 적은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는 둘 사이의 공기의 밀도를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2010-06-1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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